조혜연이 이겼다!
조회 218/2017.09.06
▲ 이세돌 9단과의 싸움에서도 두번 승리한 바(8패) 있는 조혜연이다. 일찍이 박지은 9단과 더불어 루이 나이웨이 9단을 협공했던 무서운(?) 여전사다.
끝내 이창호만 남았고, 이창호가 나왔다. 당연히 누구나 12년 전(2005년) 6회 농심신라면배에서 ‘5연승 신화’를 쓴 이창호의 상하이 대첩을 떠올렸을 터다. 그때 중국 기자는 이창호의 투혼을 보고 이렇게 찬탄했다. “한 사람이 지킨 문을 만 사람이 열지 못한다.” 팬들도 이창호 9단이 과연 예전처럼 기적의 연승을 다시 한번 보여줄 것인가, 큰 관심을 보였다.
그 옛날 농심협곡에서 대륙의 백만대군을 홀몸으로 막아내던 이창호가 지옥(지지옥션)문에서 다시 홀로 여전사들을 맞이하다. - 킬러의수담 (사이버오로 뉴스 댓글에서)
그렇지만 그를 에워싼 반상 아마조네스의 여전사는 7명. 조혜연·김신영·박지은·김혜민·김채영·오유진, 여기에 여자랭킹 1위 최정까지 7대1의 싸움. “이창호 9단이 한숨을 쉬고 있을 것이다. 서너 명이면 몰라도…” 앞선 판에서 웬만큼 버텨줄 것으로 기대했던 ‘9연승의 신화’ 서봉수 9단이 단 2합(두 판) 만에 무너지자 같은 여자기사인 이민진 8단조차 코너에 몰린 신사팀을 안타깝게 여겼다.
상하이 대첩에서 12년이 지났다. 전성기도 지났다. 돌파해야할 상대가 여자기사라 해도 이들의 실력이 이미 녹록치 않고 무엇보다 수가 많다. 중과부적(衆寡不敵)의 상황에서 천하의 이창호라 한들 어찌 부담스럽지 않겠는가. 관운장이 5관(關門) 돌파를 하듯 이창호 9단이 7관의 ‘지옥(지지옥션)문’을 뚫기엔 너무 첩첩산중이었고, 첫번째 ‘조혜연 관문’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끈질기고 견고했다.
▲ 어깨가 천근만근이었을까. 그랬을 것이다. 이창호 9단은 눈을 부볐고 더워했다. 앉자마자 바로 양복 상의를 벗어 의자에 걸쳤다.
▲ 묵상하는 모습이 아니다. 자주 눈을 꿈벅거렸고, 복기할 때 보니 관자놀이가 땀에 젖어 있었다. 썩 가벼워 보이지 않았다.
‘반집’의 그 분을 ‘반집’으로 돌려세운 그녀, 조혜연
9월4일 오후7시, 한국기원 바둑TV스튜디오에서 재개한 11기 지지옥션배 신사 대 숙녀 연승대항전에서 신사팀의 마지막 남은 주자 이창호 9단이 여류팀 6번째 선수 조혜연 9단에게 264수 만에 백 반집패를 당했다. 중반 압도적인 국면을 구축하고서도 이후 안전운행을 거듭하다 ‘반집의 승부사’가 ‘반집’에 분루를 삼키고 말았다.
서로 아웃복싱을 구사한 바둑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격렬한 인파이팅을 펼친 것도 아니었다. 흑백의 돌들이 시종 몸을 맞대며 접전 양상을 띠었으되 기로에 설 때마다 형세를 좋게 본 이창호 9단이 추궁하기보다는 무난한 선택을 하면서 미세한 계가바둑으로 흘렀고 끝내 역전을 허용했다.
이9단과의 대결을 앞두고 역대전적 4전 전패를 의식한 조혜연 9단은 “이창호 9단에겐 한번도 이긴 적이 없다. 내용도 번번이 좋지 못했다. 남은 대국에서 좋은 내용을 펼치겠다.”고 전의를 다졌고 당당히 접전을 펼친 끝에 우승을 매조지하는 기쁨을 누렸다.
이창호 9단은 지난해 만40세로 신사팀의 출전연령을 낮추면서 처음으로 지지옥션배에 참가하였으나 서봉수 9단이 초반 9연승을 몰아친 덕에 출전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고, 따라서 올해가 실질적으로 지지옥션배 첫 데뷔전이었던 셈인데 패점을 안고 말았다.
▲ 국후 승자인터뷰에 응한 조혜연 9단. 꾸밈없이 언제나 시원시원하게 말한다.
- 오늘 대국 어땠나요? 언제 승리 확신했는지.
“사실 초반을 안 좋게 시작한 데다 계속 중앙에서 무리를 했고, 흑(이창호 사범님)이 유리하다고 보고 풀어주셨다고 해야 하나...초반에 흑이 승부를 걸어와도 좋을 국면이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 실전처럼 두신 거 아닌가 싶습니다. 이 덕분에 계속 버티다가, 제가 더 엷기는 한데 어느 정도 집으로 따라가게 되니까, 덤이 있으니까 좀더 버티면 해볼만하다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중반 이후는 뭔가 그래도 느낌은 좋은 거 같은데 의심스럽더고요. 워낙 뚜벅뚜벅 두시니까. 게다가 마지막 반패 싸움을 두고 패감 착오로 반패 승부를 가정하고 있기도 했고요.”
- 숙녀팀의 우승을 결정지은 의미 있는 승리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이창호 9단에게 4연패를 당하다 처음으로 이긴 것이기도 한데...
“이 판을 앞두고 이창호 사범님의 최신 기보를 많이 놔 봤는데, KB바둑리그나 이세돌 9단과 둔 바둑을 보면서 이 분은 내가 맞둘 수 있는 레벨이 아니구나, 너무 잘 두셔서...그래도 가능하면 내가 버텨서 힘을 좀 빼 보자는 전략이었습니다. 일대일 대국이었으면 힘들었겠지요. 뒤에 6명이나 남아있는 여자선수들 때문에 부담을 가지셔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셨을 겁니다. 뒤에 버티고 선 여자선수들이 저한테는 힘이 됐고 이창호 사범님한텐 부담되지 않았나 싶습니다.”